2014. 2. 7. 14:18

*학타르님 리퀘 : 킬러펭귄, 2년 후 킬러 왼팔의 화상 흉터를 만지는 펭귄

 

 

 

  선장과 헤어진지는 이미 한참 지났지만 너무나 평안한 섬 분위기에 마음 또한 평안해져 그랜드 라인으로 돌아온 것만 같다고 느끼며 펭귄은 섬의 한 마을을 돌아다녔다. 다른 동료들은 이미 섬의 어딘가로 흩어져서 각자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있었으며, 펭귄 또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려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일단 선장이 항상 해왔던 대로 부족한 약품부터 구입하고, 그 다음은. 적어온 쪽지에 적혀있는 각종 약초들과 약품들의 목록을 가볍게 훑은 뒤 고개를 들어 가게를 찾았다. 너무 뜨겁지는 않지만 봄의 햇볕이라고 하기는 강한, 살짝 땀이 차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펭귄은 모자 밑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약간은 선장이 그리운 것 같기도, 라면서 선장 얼굴을 눈앞에 그려내고는 혼자 허탈하게 웃은 후에 다시 걸음을 힘차게 내딛었고, 이내 필요한 물품들이 보이는 가게를 발견했다.

 

  가게는 꽤나 컸다. 대부분의 필요한 약품들이 갖춰져 있는 큰 약방이었으며, 주인은 다른 손님들을 대하느라 꽤 바빠 보이는 모양이었다. 혼자서 약품을 찾아 해매고 있자니 직원으로 보이는 풍성한 금발을 가진 어여쁜 아가씨가 다가와서 살갑게 웃으며 같이 약품을 찾아주었고, 그녀의 사적인 질문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여성은 눈이 살짝 쳐져있어 순한 인상을 주었으며 살짝 웃을 때마다 보이는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펭귄은 이런 상황도 오랜만이라고 느끼면서 긴장이 풀려 조금씩 즐기고 있었고, 그녀가 추천해주는 다른 약품도 흥미를 가지며 그녀와의 대화를 즐겼다.

  “그래서, 이건 저희 섬에서 인기 있는 약품인데요. 머리가 울리듯이 아플 때 한 알만 먹으면 싹 나아요.그리고 이건 용액으로 나온 건데 목이 붓거나 기침이 날 때 따뜻한 물 한 컵에다 타먹으면 가라앉아요.”

  과연 감기에나 쓰일 약품들이 우리 배에서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설명과 함께 조금씩 닿아오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펭귄이었지만, 이내 선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실험용으로 쓰일 약이 아니면 우리 배에 필요하지 않은 약품은 사오지 말도록.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한 생생한 선장의 목소리에 가볍게 웃으면서 괜찮습니다. 라고 거절을 했고, 직원은 아쉽다는 듯이 웃으며 그러면 오늘 저녁에는 한가해요? 라는 본격적인 작업이 들어왔다. , 글쎄-라며 살짝 웃고는 적어왔던 약품들을 담은 바구니를 내밀며 계산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눈꼬리를 가늘게 접으며 저는 오늘 5시에 퇴근해요. 라고 묻지 않은 말 한 마디를 가볍게 뱉었다. 펭귄은 딱히 대답은 하지 않은 채로 그녀를 보고 웃으며 그럼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부족한 약품이 생각보다 많아 다른 물품을 구매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며 양 손 가득 약품들을 들고는 섬 어귀에 있는 잠수함으로 향했다. 유리병에 담겨있는 약품들이 여럿 되어 혹시나 깨질까 염려하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마을 입구를 조금씩 벗어날 때 쯤 다른 한 무리가 마을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평범하게 항해하는 집단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어디선가 본 익숙한 얼굴들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새빨갛게 솟아오른 머리를 한 한 남자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왔고, 이내 펭귄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네 선장은 어딨냐. 라고 짧게 물었다. 아직은 사실을 걸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에 대답 없이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금발의 남성이 다가와서 마을 어딘가에는 있겠지. 라며 빨간 머리를 한 남성의 주의를 끌어주었고, 먼저 가서 찾아봐. 나는 잠시 좀. 이라며 그를 내보냈다. 빨간 머리의 남자, 키드는 이내 흐음- 이라면서 그를 보다가 출발은 3일 후다. 라고 말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마을로 향했다.

  “고맙다고 해야 할 지.” 희미한 확신으로 말하며 절그럭거리는 약들이 담긴 봉투를 들고 다시 몸을 틀었다.

  “들어줄게.” 마치 자신이 연약한 여성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 약간은 짜증이 나 괜찮아.” 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손에 힘을 더 세게 주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발 머리를 한 남성은 눈치가 없는 것 마냥 따라오며 화난거야? 라고 물을 뿐이었다.

 킬러. 여기는 신세계다. 나는 너에게 내 배의 위치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긴장감을 담은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걸었고, 킬러는 그 말에 약간은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럼 저녁에는 한가해? 라고 따라오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추근거리던 직원이 생각나 어이없게 웃었고, 킬러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아직 마을에 안 들어가 봐서 지리는 잘 모르지만, 마을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술집에서 기다릴게. 5시 어때?”

  시간까지 똑같아. 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가만히 서서 킬러를 바라보고 있자 킬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 바다에서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일이잖아. 오랜만에 봤는데 가볍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 오기 싫으면 말고.”

  비록 마스크를 썼음에도 살짝은 웃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킬러를 쳐다봤고, 킬러는 짧은 인사를 한 후에 다시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짧은 순간에 많은 일이 지나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는 다시 배로 향했다.


  배에는 몇 명 남아있지 않았다. 배를 지키기로 한 선원들 몇을 빼고는 이미 마을로 달려간 지 오래였으며, 아침에 헤어질 때의 그들의 분위기를 생각해서는 오늘 내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배에 남아있던 동료들은 각자 자신의 일하기 바빴고,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 약들의 양에 펭귄은 혼자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품들이 담긴 봉투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하나씩 꺼내 정리하기 시작한 펭귄은 곧 그 일에 몰두했다. 유리병에 담긴 약들은 선반에 조심스레 옮긴 후에 남은 약초들을 늘어뜨려 놓고는 팔을 걷고 그것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약초를 분류하다 고개를 들어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면서 약간 어지럽다고 느껴 좀 전의 순한 인상의, 하지만 전혀 순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이 권해줬던 약을 떠올렸다. 그런 약들도 하나쯤은 살걸 그랬나. 라며 중얼거렸지만 그 여성은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펭귄은 다시 약초를 분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을 전부 끝냈을 무렵에는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아직은 밝다는 느낌을 받으며 시계를 봤지만 시계바늘은 이미 여섯시를 한 참 넘긴 후였다. 봄섬의 긴 태양이 아직 하늘에 걸려있을 뿐 시간이 흐르는 것은 어느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섯시 이십사분. 낮게 읊조리며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고, 배를 지키고 있던 선원들이 펭귄에게 다가와 저녁은 어떻게 할 거냐며 물었다. 저녁은 나가서 먹고 올까. 라고 생각하자 곧 금발의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고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한 후에 얼굴을 찌푸렸다.

  “자기 혼자 마음대로 정해놓은 약속 따위.” 혼자 중얼거리자 옆에서 저녁 식사에 대해 물었던 동료가 뭐?하고 다시 물었고 펭귄은 자신이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하고 도리어 되물을 뿐이었다. 펭귄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국은 나가서 먹고 올게. 라고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옆의 동료는 언제 돌아오는 건데? 라며 물었다. 글쎄. 아마 오늘이지 않을까. 라고 대답을 했고, 동료들에게 수고하라고 말하며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고민은 했다지만 결국은 무턱대고 나와서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마을 입구에 다다라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이미 약속시간은 한참 지나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 7시였고, 이곳에 왜 돌아온 것일까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겠다고 말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을 입구로 들어서서 음식점을 찾았다. 하지만 들어선 곳은 입구 바로 지척에 있는 술집이었다. 약간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설마 아직도 있겠어. 라고 생각하며 마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술집으로 들어섰지만 곧 펭귄은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금발의 남녀였다. 금발의 남성은 곤란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고, 금발의 여성은 그의 거부하는 웃음을 무시한 채 몸을 밀착시키며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펭귄은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끼며 다시 한 번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금발의 여성은 낮에 자신에게 저녁 약속을 걸었던 순진한 인상의 여성이었고, 금발의 남성은 평소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기 힘든 해적, 킬러였다. 다시 한 번 왜 이 곳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가게를 나가려는 찰나 킬러는 펭귄을 발견했고, 펭귄은 입구에 어정쩡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마 이 상황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한테 치이며 가만히 있자 킬러는 여성을 밀어내고는 펭귄에게 다가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갑게 굴며 저녁은 먹었냐고 물을 뿐이었다.

  술을 따르던 여성은 말없이 둘을 쳐다봤다. 혼란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있는 것은 킬러뿐이었고, 펭귄과 금발의 여성은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펭귄은 그저 이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거듭하면서 뒷걸음질해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에 따라 킬러는 급하게 주인장에게 돈을 쥐어주고는 펭귄을 따라 나왔다.

 

  한참을 그저 걷기만 하다 킬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여자, 아는 사람?”

  “그러는 너야말로 아는 사람이야?”

  “아니, 한창 술 마시는데 접근하더라고.”

  “...”

  “아는 사람이야? 내가 곤란하게 한 건가?”

  “...”

  “혹시 그 여자 만나러 온 건데 내가 방해했던 건가?”

  “...그럴 리가!”

  “그럼 뭐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화가 나있어?”

  “화 안 났어.”

  “거짓말.”

  “거짓말 아냐.”

  “거짓말이잖아.”

  “거짓말 아니야. 애초에 내가 왜 너랑 지금 이런 어쭙잖은 말싸움이나 하고 있어야!”

  “이거 봐, 화났네.”

 

  킬러는 앞서 걷고 있던 펭귄의 팔을 잡더니 방향을 틀어 다시 마을의 중심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딜 가는 거냐는 펭귄의 짜증 섞인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걷더니 조그마하게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으며 각자 조용히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뿐이었다. 킬러는 바 쪽에 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식사와 술을 주문했으며, 곧 따끈한 국물과 함께 식사가 나왔다.

 

  “일단 너 저녁 좀 먹자. 아직 안 먹었지?”

  펭귄은 모든 것을 킬러에게 간파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식사는 거부하지 않겠어. 라는 단호한 마음으로 식사를 시작하였고, 킬러는 식사하는 펭귄의 모습을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뭐야, 너는 안 먹어?”

  “나는 아까 이미 먹어서.”

  아, 그 여자랑. 이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으며 입 안으로 음식물을 꾸역꾸역 밀어 넣던 펭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진짜로 5시부터 기다린 거야?”

  “.”

  “어째서?”

  “약속했잖아. 그리고 모처럼 오랜만에 만난 거니까 같이 술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 네가 안 온다면 어쩔 수 없는 거였지만.”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펭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고, 킬러는 느긋하게 술을 마셨다.

  “, 내가 오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그랬던 거야.”

  “그럼 그 여자랑 밤새 술을 먹던지 했겠지.”

  능청맞게 웃으며 대답을 하자 펭귄은 인상을 찌푸리고 술이나 마저 마시라며 술잔에 넘칠 정도의 술을 가득 채워주었고, 킬러는 그 술을 가볍게 입에 털어 넣었다. 술잔이 빔과 동시에 펭귄은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워 넣었고, 킬러는 특별한 말없이 다시 술을 마셨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두 남성의 술판이 시작되었지만, 가게의 조용한 분위기에 맞게 차분히 주거니 받거니 할 뿐이었다. 킬러가 펭귄의 잔에 술을 따라주자 펭귄의 시선은 술병을 따라 찬찬히 옮겨갔고, 이내 도착한 곳은 그의 왼팔이었다. 그의 잘 다져진 근육 위에 그의 왼팔은 흉터로 처참히 그어져 있었고, 펭귄은 더디게 손을 올려 팔을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갑작스런 펭귄의 태도에 킬러는 약간 놀란 기색을 취하며 말했다.

  “의사로서 하는 말인데, 몸 좀 아껴라.”

  킬러는 펭귄의 손이 살풋 닿아있는 팔 부근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세계에 발을 디디기 전부터 각오한 일이라서 그런 거라면 별로 신경 안 써.”라면서 무신경하게 말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의사로서가 아니라 그냥 너로서 하는 말이라면 조금은 들어볼지도.”

  마치 문안 인사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킬러의 말에 펭귄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고, 킬러를 쳐다보았다. 킬러는 자주 보기 힘든 웃음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고, 펭귄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이 살짝 붉어져 밥이나 먹으라며 킬러의 팔을 내던지다시피 했다. 펭귄은 남의 속도 모르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물을 들이켰고, 킬러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없이 둘은 술을 마셨고, 술병을 비우는 속도는 점점 가속되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취해서 뻗었을 법한 양의 빈 술병들이 옆에 나란히 나열되었지만 그 둘은 그만둘 줄을 몰랐다. 약간은 취기가 오른 것인지 펭귄이 잠시 술병을 내려놓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었다. 곧 정리한 생각을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각오하고 이 바다에 뛰어든 거라면 더 이상의 걱정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조금은,아쉬울지도.”

  말을 끝냄과 동시에 펭귄은 킬러의 왼팔 흉터에다가 입을 살짝 맞추었고, 킬러는 바로 펭귄의 얼굴을 잡아 올려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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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