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7. 01:54

*루지님 리퀘 내용 : 샤본디 제도의 키드와 로우의 싸움 이후에 킬펭 둘이 처음 만나서 썸타는 망상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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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전투이다. 광활한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를 하며 만나는 해적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하며, 혹은 해군과 싸우기도 한다. 해적들은 이기기도 하며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기 바쁘기도 하다. 키드 해적단도 이와 마찬가지였으며, 그 날은 답지 않게 후자인 상황이었다. 칠무해-바솔로무 쿠마-가 등장했고, 키드 해적단은 원치 않게 하트 해적단과 함께 그를 물리쳐야했다. 그 후 정상결전이 영상전보벌레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새겼으며,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신세계를 생각하고는 키드 해적단의 단원들은 자신의 역량을 다시금 생각하며 입을 비쭉 웃었다. 

 

  하지만 키드 해적단은 샤본디 제도에서 한바탕 사건을 일으킨 후 바로 어인섬으로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샤본디 제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자들을 구하러 항해를 했고, 며칠 전 일어났던 정부와 흰수염과의 전쟁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모두가 활기차게 웃어대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배의 코팅은 끝난 상태라 물품만 구하고 바로 어인섬으로 떠날 계획이었으나, 행운인지 불운인지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키드는 하는 수 없이 섬의 한 구석에 배를 정박시키고 단원들에게 약간의 돈과 함께 자유 시간을 주었고, 덕분에 킬러 또한 오랜만의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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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작스러운 선장의 명령에 그들은 전쟁 한 가운데에 출현하였으며, 부상자 두 명을 치료하였고, 명성이 자자한 명왕 실버즈 레일리를 만났다. 하루하루를 다급하고도 위험하게 보냈지만 막상 그 배의 선장, 트라팔가 로우는 모든 행동을 너무나 느긋하게 행동하였고, 단원들은 납득인지 체념일지 모를 반응을 하며 묵묵히 선장을 따랐다. 그렇게 여인섬을 지나 다시 출항을 했고, 기록지침이 가리키는 다음 섬으로 방향을 잡았다. 

 

  도착지는 오랜만의 겨울섬이었다. 새하얀 눈들이 소복소복 날리고 있었고, 섬 어귀에서는 아이들이 옷을 꼭 여민 채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외부인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다가와서 신기하다는 듯이 묻고 만지다가 꺄르르 웃고는 다시 저들끼리 놀러 달려갔다. 한바탕의 높고 상큼한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난 후에야 마을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은 아이들이 뛰어간 곳으로 발걸음을 떼는 수밖에 없었다. 눈은 녹아 사라질 만큼 조금도, 파묻힐 만큼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었으며, 뽀도독-하고 밟힐 정도의 눈이 유지될 정도로만 내리고 있었다. 노스블루의 세찬 눈보라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눈이라고 생각하며 펭귄은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눈길에 발을 천천히 내딛었다. 

 

 흩어져 있다가도 다시 모아지는 아이들의 발자국을 따라 꾸준히 걷자 마을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영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다다라서 로우는 베포와 함께 약초를 사러 가겠다고 했고, 다른 선원들은 각자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하기로 했다. 로그를 채우기 위해서는 나흘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틀간 각자 생활하다 오라는 선장의 명령을 받고 해산을 하였고, 펭귄은 조용히 마을을 벗어나 눈을 즐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참을 걷고 있을 와중에 멀리서 금발의 한 남자가 보였고, 머지않아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기척에 몸을 긴장시켰으며, 언제든지 공격이 가능하도록 조용히 무기를 바로잡았다. 허나 곧 미친 생각은 이곳은 마을이 지척인 곳이라 마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마을 사람이 아니더라도 굳이 여기서 싸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선장 키드로부터의 잠깐 동안의 자유 시간이었고, 이를 망칠 생각이 없었던 킬러는 차분히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했다.허나 다가오는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샤본디 제도에서 봤던 새하얀 단복을 입은 남자였으며, 그 또한 킬러를 보고는 놀라는 눈치였다. 새하얀 단복과 주변의 내리는 눈의 색이 일치해 눈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그 또한 계속해서 걸어왔다. 머지않아 서로 얼굴이 확실하게 분간이 가는 거리가 되었고, 약간은 어렵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그는 계속해서 다가왔다. 

 

  지금, 혼자?” 킬러는 의외의 낮은 목소리에 새삼 놀라며 그를 천천히 쳐다보았고, 어찌 보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답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우연인걸. 나도 혼자인데. 당신, 키드 해적단의 부선장, 킬러지? 저번에 샤본디 제도에서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처음에는 그 가면을 안 쓰고 있어서 긴가민가했지만.”

  아아, 가면은 잠시 벗었지. 굳이 쉬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으니까. 샤본디 제도에서는 선장이 좀 사고를 쳤지.”

  “우리 선장도 말이지. , 이쯤 되면 내 소개는 안 해도 잘 알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하트해적단 소속, 펭귄 아닌가. 너 정도라면 당연히 알지.”

  “이야, 영광인걸.” 펭귄은 짧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혼자 있는 거야? 분명, 선장이랑 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너야 말로 왜 혼자 있는 거지?”

  “...”

  “아무래도 같은 이유 같군. ...술이나 한 잔 할 텐가?”

  “그러지.” 

 

  펭귄과 킬러는 자연스레 술잔을 부딪쳤다. 막상 술을 같이 먹게 되었지만 특별히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이 가져온 술만 축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킬러가 살며시 입을 열어 그건, 노스블루의 술인 건가. 하고 운을 뗐다. 

 

  노스블루의 술이란 건 어떻게 안 거지?” 

  “너희 해적단, 노스블루 출신들이잖아. 그래서 생각해본 것일 뿐이다.”

  

  펭귄은 킬러의 대답에 만족한다는 듯이 술을 쳐다보며 슬며시 웃고는, 너도 한 잔 해볼 텐가? 하며 권했다. 아까부터 슬며시 보일 듯 말 듯 한 웃음이 예쁘다고 느끼면서 술잔을 내밀었고, 이내 술잔에는 술이 찰랑거리며 가득 찼다. 술을 기점으로 조금씩 대화가 시작되었고, 조금씩 살얼음이 녹듯이 분위기가 녹아나갔다. 

 

  그렇게 한동안 둘은 끊길 듯 말 듯 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술을 마셨고, 하늘에는 어느덧 해가 지고, 별이 하나둘 박히기 시작했다.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몸을 휘감아 코끝이 조금씩 시려졌다. 펭귄은 슬슬 일어서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빈 술병들을 집고 일어났고, 그의 행동을 가만히 쳐다보던 킬러가 입을 뗐다. 

 

  , 더 마시지 않을 텐가.” 고개로 마을방향을 가리키며 킬러가 말했고, 예상치 못한 권유에 살짝 놀라 그를 쳐다보며 펭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의외인걸. 단순한 일회성 만남으로 생각했는데.” 

  “, 단순한 일회성 만남이라도 들어가서 한 잔 더 하자고 말해볼 수는 있지.” 

  “-그런 건가.” 

  “그렇다 하지. 그래서, 한 잔 더 할 텐가?” 

 

  그 사이에 많아진 별들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을 하던 펭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러면 그쪽이 사는 건가? 라고 다시 한 번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킬러는 잠깐의 미소에 만족하며, 귀한 몸이 응해줬는데, 내가 사야지. 라고 말하며 얄궂게 웃었다. 

 

 

 

**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 술집이 달린 여관을 찾았으며, 구석진 자리를 잡고는 술을 주문했다. 킬러가 술을 주문하면서 주인장에게 조용히 방 하나를 예약했고, 이내 큰 소리로 식사도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곧 소박하지만 잡다한 요리 서너 개와 술이 곁들여 나왔다. 복작복작한 가게 안에서 둘은 조용히 식사를 시작하였으며, 킬러는 다시 펭귄에게 술을 따랐다. 이 술, 조금 도수가 높을지도. 따르면서 나긋이 말하자 펭귄은 조용히 웃으며 술잔을 받았다. , 하루쯤이야- 펭귄이 킬러에게 술을 따랐고, 킬러는 모자 밑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서 살짝 비춰지는 웃음에 다시 한 번 미소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술잔을 받았다. 그렇게 둘의 식사가 시작되었고, 어느샌가 그들도 시끄러운 가게에 흡수되어 대화를 주고받았다. 

 

  밖에는 이미 진득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무수히 박힌 상태였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킬러는 오늘 좀 과하게 마셨나. 라고 생각을 하면서 앞에 앉아있는 펭귄을 쳐다봤다. 펭귄도 취기가 올라왔는지 안색이 약간 불그스름한 상태였고, 킬러는 아까 잡은 방으로 펭귄을 데리고 갔다. 방은 평범했으며,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침대에 다다르자 펭귄은 가만히 침대를 바라보더니 침대가 하나뿐인 건가. 라고 중얼거렸고, 연이어 뭐,상관없나. 라면서 침대에 누웠다. 뒤미처 펭귄은 조용히 잠들었고, 킬러는 방에 들어왔던 모습 그대로 서서 펭귄을 내려다보았다. 상관없다라- 라며 작게 읊조리면서 침대에 사풋 걸터앉아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웃는 모습이 예뻤는데. 예쁘다고 말하면 화내겠지.

-오늘은 여러모로 운이 좋은가보군. 

 

  온갖 생각을, 하지만 하나로 모아지는 생각을 하면서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고, 처음으로 뭔가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가갔다. 모자, 벗기면 화내려나. 모자에서부터 시선을 조금씩 내리면서 입술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웃을 때 예쁜데. 잘 웃질 않는단 말이야.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살며시 쓰다듬다 다가가서 입술을 마주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지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다시 한 번 그의 입술을 어루만지며 웃고는 나란히 누웠다. 킬러는 조금씩 스며드는 잠기운에 눈을 감으면서 나쁘지 않다가 아니라, 좋다가 옳은 표현이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별들은 사라지고 어느덧 햇빛만이 하늘을 가득히 뒤덮고 있었고, 펭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간만에 술을 많이 마셨군. 혼자 중얼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피던 펭귄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킬러를 보았다. 깨워야 하나. 그를 가만히 지켜보자니 어제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 펭귄은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조금씩 피어나는 기억 중에 입술이 닿았던 느낌이 들었고, 설마 하는 마음에 킬러를 다시 쳐다봤다. 

 

  “...아니겠지.” 

  “뭐가 아닌데?” 부스스한 상태로 일어난 킬러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고, 이에 놀라 펭귄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너 어제..”

  “어제?”

  “...”

  “무슨 일이지? 설마 어제 술 먹고 추태를 부렸다거나 그런 걱정이라면 말지. 술 취한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정했으니까.”

  “...” 

 

  복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킬러를 바라보던 펭귄은 이내 자신의 착각이라고 매듭지으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킬러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 일어났고, 어느 정도 추스른 후에 방을 나섰다. 

 

  전날 저녁 식사를 하였던 자리에서 다시 아침 식사를 하였고, 아무런 대화 없이 둘은 여관을 나왔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듯이 둘은 조용히 걸었고, 이내 어제 만났던 장소로 돌아왔다. 킬러는 아쉽다는 듯이 웃으며 펭귄에게 물었다. 

 

  아까 하려던 말, 뭔지 다시 물어도 될까.”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묻는 그의 눈은 웃고 있었으며, 펭귄은 그의 웃음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이 나온 거 같아서.” 

  “흐음- 예상외의 반응인 걸.”

  “답은 알겠지만 어떤 반응을 바란 건지 모르겠는데 말이지.”

  “글쎄, 내가 생각하기엔 딱히 네가 정답을 찾은 건지도 모르겠군.”

  “그럼 정확한 답을 위해서 물어보지. 왜 그런 거지?”

  “사실을 말한다면, 용서라도 해줄 건가?” 

 

  펭귄은 그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하다 대답했다. 

 

  다음번에.” 

  “?”

  “다음번에 만나서 들어보고 용서해줄지 결정하지.”

  “...”

  “그러니까, 다음번에 또 만나자고. 킬러.” 

 

  모자 밑으로 희끗희끗 보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펭귄은 대답함과 잇따라 옷깃을 잡고 짧게 입을 맞췄다.급작스러운 입맞춤에 킬러는 벙 찐 표정으로 펭귄을 보다가 이내 크게 웃으며 새삼 반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 다음번에 다시 만나지.” 

Posted by 류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