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7. 01:50

*롤롤님 리퀘 내용 : 학창물 키드로우로 둘이 옥상에서 담배 피우면서 땡땡이치다가 선생님이 와서 둘이 숨다가 자연스럽게 붙게 되고 둘이 이걸 계기로 뭔가 감정변화가 생겨서 그 감정을 알아가는 단계달달물




* 

  무덥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쌀쌀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교실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애초에 공부와는 거리가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으며, 학교생활을 중요시 여기지도 않았기에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본능을 이기지 못 하고 의자를 밀어냈다. 교실을 나가 계단을 밟음과 함께 수업이 시작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담배의 유무를 확인했다. , 반장한테 양호실 간다고 뻥이라도 치라고 할 걸 그랬나. 라는 쓸모없는 후회를 하면서 휘적휘적 계단을 걸어 올라갔고, 옥상 문 앞에 섰을 즈음에는 계단 저 밑에서 선생님들이 교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다보니 시작한 담배였지만 딱히 끊을 생각도 없었기에 꾸준히 피워왔고, 그 결과 오늘도 옥상 문 앞에 섰다. 최근 학교 축제다 뭐다 해서 선생님도 학생들도 바쁘기에 감시하는 사람도 없어 옥상 한 구석은 이미 내 담배구역으로 자리 잡은 터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평소와 달리 인영이 보여 꺼내던 담배를 얼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고, 한 편으로는 이미 피우러 나온 거 화장실이라도 가야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지를 확인하려고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그곳에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고, 또한 익숙한 자세가 보였다. 

 

  , 트라팔가. 네놈은 이미 피고 있었구만.” 

  유스타스여.”

  “너는 공부도 잘 하는 놈이 왜 여기서 이러냐. 가서 수업이나 듣지.”

  “수업 안 들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니까. 딱히 들을 필요는 없다.”

  “, 그러셔요?” 

 

  일부러 하는듯한 저 소리에 약간 울컥해 비꼬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기에 포기하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은빛의 담배 갑을 꺼냈다. 한 개비를 꺼내고 다른 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얼마 들어있지도 않은 지갑뿐이었다. 당혹한 얼굴로 뒷주머니와 교복 상의, 안주머니까지 전부 뒤척였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실밥 몇 개와 먼지들뿐이었고, 라이터라고 추정되는 물체는 어디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찜찜하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담배냄새에 포기할 수는 없어 트라팔가에게 라이터가 있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알싸한 담배연기뿐이었다. 

 

  아니, 네놈이 빨고 남은 담배연기 말고 라이터 말이야, 라이터.” 

  “안타깝게도 네놈에게 줄 라이터는 남아있지 않아서.”

  “어째 아까부터 시비 거는 것 같다?”

  “하하, 혼자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가 싶은데.”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혼자 유쾌하게 웃더니 눈앞에 라이터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이것 보라고. 네놈에게 나눠줄 가스가 하나도 없잖아?” 

 

  그의 손에서 잽싸게 라이터를 낚아채 불을 켜봤지만 소리조차 안 났고, 짜증이 치밀어 올라 라이터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그는 몸을 굽혀 라이터를 줍더니 쓸모없는 라이터를 굳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런, 학교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배우지 않았나? 

  “보시다시피 이렇게 수업을 안 들어서 말이지. 기억이 안 나는군.”

  “자기 모르는 건 안 배웠다고 떼쓰는 게 참 어린아이 같군 그래, 유스타스여.”

  “어린아이 같아서 미안하다?”

  “사과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말이지. 그리고 이렇게 라이터를 버리면 들키기 쉽다고?”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아직 안 피웠으니 걸려도 너만 걸리는 거지.”

  “이런 쪽으로는 말을 잘 하는군 그래. 불이야, 아직 붙일 방법은 남아있지.”

  “무슨.” 

 

  그는 쥐고 있던 담배를 내 입으로 갖다 대더니 나한테 다가와 담배를 맞붙였고, 이게 무슨 일인가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내가 가만히 있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담배키스 몰라? 라고 물었고, 그제야 깨달아 숨을 들이셨다. 여러 번 숨을 들이셨지만 담배에 불은 붙지 않았고, 기다리다 못해 지친 트라팔가는 잠시 떨어지더니 한숨을 쉬었다. 민망함에 애꿎은 담배만 탓하고 있자 트라팔가가 다시 다가와서는 조금 더 짧아진 담배를 들이대며 그 정도로는 안 돼. 더 깊게 숨을 들이셔. 라고 말했고, 그에 따라 최대한 깊게 숨을 빨아드렸다. 담배에는 불이 옮겨 붙었지만 트라팔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지라 나는 굳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내 상태를 알아챈 것인지 트라팔가는 짧게 웃고는 다시 떨어졌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나란히 담배를 피웠고, 이미 피우고 있던 트라팔가의 담배가 짧아져 끄려고 할 때쯤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트라팔가도 들었던 것인지 서로 시선을 마주했고, 너나할 것 없이 담배를 밟아 끄고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발소리를 죽이며 옥상 반대편으로 넘어가 좁은 창고 같은 공간으로 달려갔다. 이미 물건들이 가득해서 평소에는 그곳에 들어간다는 상상조차 못했던 공간이었지만, 급할 때는 뭐든 된다고 그곳에 몸을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좁은 공간에 들어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옥상 문이 열렸고, 신발소리가 또각또각 들렸다. 날카로우면서도 가벼운 소리가 들려 학주가 아닌 여선생임을 확인하고 일차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귀를 더욱 기울였지만 트라팔가가 계속 꼼지락거려 짜증에 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만 움직이라고, 트라팔가!” 

  “하지만 불편하다, 지금 이 자세.”

  “나도 불편해. 조금만 참아.” 

 

  그가 꾸준히 움직이기에 한 쪽 팔로 그를 꽉 안아 그의 움직임을 봉쇄한 다음, 중심을 잡기위해 나머지 팔로 벽을 짚었다. 그는 마치 인터넷 소설의 여주인공마냥 내 가슴에 기대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고, 그것이 싫다며 계속 나를 밀어냈다. 걸려도 상관없는 것인지 기껏 좁은 공간에서 같이 몸을 숨기는 상황임에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겠다며 자존심을 세워 결국 나 또한 어정쩡한 자세가 되면서 양 팔로 그를 있는 힘껏 안았다. 그러자 그가 가슴팍에 얼굴이 파묻혀 말하기 힘들어지자 나를 치기 시작했고, 짜증이 한 방울 두 방울 쌓여가다 결국은 흘러 넘쳐버렸다. 

 

  어이, 트라팔가! 네놈!” 

  “시끄럽고 무거운 네놈 팔이나 풀러, 유스타스여.” 

 

  때마침 여선생의 멀어지는 발걸음소리가 들렸고, 작아지는 발소리와 함께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을 풀었다. 급작스러운 몸의 이완으로 인해 그대로 중심을 못 잡고 넘어졌고, 하필이면 트라팔가 쪽으로 넘어지게 되어 급한 대로 머리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것은 되려 역효과를 끌고 와버렸다. 부자재들 사이에 파묻히면서 트라팔가와 나는 상당히 미묘한 포지션이 되었고, 지척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이미 사고가 정지해버린 상태였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그저 넘어져서 아팠던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 또한 더 이상의 움직임도 짜증도 없었고, 그렇게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마치 키스를 할 것 마냥 가까운 거리였던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놈도 의외로 참 잘생겼단 말이지.부터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알 수 없게도 이놈이랑은 하면 설꺼같아.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을 마치자마자 혼자 당황해 스프링처럼 튕겨 몸을 일으켰고, 트라팔가 녀석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너무 늦은거 같다며 수업 들으러 간다는 둥의 답지 않은 변명을 둘러댄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결국 트라팔가는 부자재들 속에 파묻히도록 그대로 놔둔 채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에 찬물을 들이부었다. 

 

-뭐야, 이건. 모르겠어. 설마. 내가? 그 녀석을? 그 녀석은 일단 남자잖아. 그래. 이건 아니지. , 이건 아니야. 

-...그러면 방금 그건? 

 

  결국은 한 가지의 결론에 다다랐고, 담배 키스, 끌어안았던 사실 등의 방금 전까지의 행동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트라팔가가 눈치를 챘을까. 고민은 하면 할수록 복잡해졌고, 엉켜버린 이어폰도 내 머리보다는 풀기 쉬울 거야. 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세면대를 붙잡고 쭈그려 앉아 눈을 질끈 감고 숫자를 천천히 세면서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았고, 열이 식었다고 생각이 될 때 쯤 흘끗 거울을 쳐다봤으나, 이내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트라팔가 녀석, 확실히 눈치 챘겠지. 

 

  분명 열이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은 여전히 내 머리색만큼 빨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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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천희